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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24 소원 (7) - 박승민(풀칠아비)
  2. 2009/06/17 스토리텔링의 비밀 -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 박승민(풀칠아비)
  3. 2008/08/26 죽은 과거 - 박승민(풀칠아비)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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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테라피 (최명기 지음, 좋은책만들기)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이만교 지금, 그린비)


우연히도 최근 읽고 있는 두 권의 책에서 같은 영화를 인용하고 있다.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의 괴리를 설명하기 위해 타르코프스키의 ‘스타커[잠입자]’를 예로 든 것이다. 형제가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운석을 찾으러 갔다, 한 명이 죽고 나머지 한 명이 운석을 발견하게 된다. 운석을 보며 죽은 형제를 살려달라고 소원을 빌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죽은 형제는 살아오지 않고 자신이 부자가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무의식 속의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죄책감에 자살하게 된다는 얘기이다.

어려운 의식과 무의식 얘기는 접어두고, 갑자기 이번에도 소원을 한가지만 들어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동화를 읽으면서 왜 소원은 꼭 세가지만 들어주나 하고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그런 상황이 되면 소원으로 무엇을 골라야 하나 고민했던 것 같다. 왜 바보처럼 ‘내가 바라는 모든 소원 들어주기’ 라고 소원을 말하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고.

자신의 소원을 미리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왜냐고? 별똥별 떨어질 때 소원을 빌어야 하니까 말이다. 별똥별 떨어질 때 소원 빌어본 적 있는가? 정말 어렵다. 그냥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래서 나는 별똥별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꼭 이루어진다고 믿고 싶다. 얼마나 간절한 소원이면 …

90년대 후반이었던 것 같은데, 하늘에 별똥별이 왕창 떨어지는 우주쇼가 있었다. 그때 나가서 소원도 왕창 빌었어야 하는 건데 …
2009/07/24 07:28 2009/07/24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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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의 비밀 -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스토리텔링의 비밀-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마이클 티어노 지음, 김윤철 역, 아우라

이 책은 ‘대부’, ‘글래디에이터’ 등의 현대 영화를 통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풀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명작이 갖추어야 할 이야기의 요건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다 밝혔다고 한다.

역시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다는 얘긴가?

누가 최근에 개봉한 SF영화를 보고 와서 ‘더 이상 만화영화는 필요 없다’라고 이야기 했다. 이제 영화 스토리 작가는 이야기를 실제로 보여줄 수 있는가를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단지 제작비의 문제일 뿐이다.

이제 영화 스토리 작가는 막강해진 표현수단을 기반으로 더욱더 훌륭한 이야기 만들기에 매진하면 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 막강해진 힘이 되려 작가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표현에 한계가 많던 시절 작가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야기의 일부를 관객의 상상력에 넘겼다. 관객은 자신의 상상력에 의한 자신만의 감동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그런데 요즈음 많은 영화들은 ‘상상 그 이상’을 부르짖으며 모든 것을 다 보여주려 한다. 아니, 반드시 보여주어야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스토리 작가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관객도 무슨 이야기인가 곰곰이 생각하기 보다는, 돈 많이 들여 만들어진 세세한 그림 중 행여 내가 놓치는 것이 있을까 노심초사하여야 한다. 영화 끝나고 누군가 감독의 세밀한 터치 운운하며 얘기하는 장면에 대하여 맞장구치지 못한다면 곧장 소외감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아니더라도 충분히 복잡하고, 생각할 것 많은 세상이다.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즐기고 싶다.’ 이것이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오늘 사는 사람들이 영화에게서 기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상상 그 이상’이란 것이 누구의 상상 이상이란 것일까? 평균 인간을 말하는 것일까? 평균 인간의 상상력은 이렇게 점점 퇴화되고 있는데.
2009/06/17 14:43 2009/06/17 14:43
 

죽은 과거

[죽은 과거]
아이작 아시모프 저


과거를 볼 수 있는 타임머쉰 기술이 있다면, 이 과학기술이 일반대중에게 공개되어야 할까?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과거의 추억이나 사랑에 다시 젖게 하고, 또 옛날의 실수를 되새겨 반성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1초 전’도 과거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그 과학기술이 타인의 과거도 볼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다시 생각해보자. 그래도 그 타임머쉰 기술이 공개되어야 할까?

아이작 아시모프는 그의 SF단편 ‘죽은 과거’에서 정부의 통제에 대항하여 주인공들이 그 타임머쉰 기술을 힘들게 공개시키게 한 후, ‘사생활의 종말’을 고하는 반전으로 끝맺는다. 그 소설 속에서 정부는 권력 유지를 위하여 그 기술을 독점하였을 수도 있고, 진정으로 사생활의 보호를 위해 그 기술의 발전을 저지하였을 수도 있다.

과학자들이 자발적으로 그런 연구는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모든 부작용을 사전에 고려하여야 한다면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능할까? 그리고 지식의 중앙통제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그리고 그것을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2008/08/26 16:15 2008/08/2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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