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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9/24 아무 돼지가 보낸 편지 #3 (2) - 박승민(풀칠아비)
  3. 2009/09/23 만원버스 탈 때 주의할 점, 둘 (2) - 박승민(풀칠아비)

커피 냄새가 고팠다.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미 알람시계는 몇 번을 울고 꺼짐을 반복하여 마지노선임을 알리고 있었다. 어쩌겠는가? 일어날 수밖에. 후회가 밀려왔다. 어젯밤 어인 호기로 그렇게 늦게까지 TV를 보았단 말인가?

그래도 일단 일어나니, 비몽사몽간에도 몸은 자동으로 움직였다. 내가 세수를 어떻게 했는지, 옷은 어떻게 입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느새 몸은 허용된 식사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준비된 상태로 식탁에 앉아 있었다. 입안이 까칠했다. 밥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아직 5분이나 남아 있었지만, 밥 보다는 진한 커피 냄새가 더욱 절실했다. 커피 물을 끓였다.

그런데 커피를 막 타려는 참에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집밖에 나가기 전에 신호가 와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커피는 어쩐단 말인가?

순간 너무나도 어이없는 생각을 했다. 변기에 앉아서 마시는 커피 한 잔 말이다. 하마터면, 향긋한 커피 냄새가 고파 마시고자 했던 커피였음을 잊을 뻔했다.

2009/10/30 10:55 2009/10/30 10:55
 

화장실의 대화

화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두 남자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세면대나 소변기 앞에는 아무도 없었고, 칸막이 문도 모두 닫혀있었는데 말이다.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참 묘해서, 숨기면 자꾸만 더 알고 싶어지는 것인지라. 무슨 은밀한 얘기를 나눌게 있어, 화장실 문까지 닫고 얘기할까? 귀를 더욱 쫑긋하여 들어보니 두 남자의 목소리가 각기 다른 칸에서 나오고 있는 것 아닌가?

아니, 화장실에서 큰 일 보며 대화를 나눌 만큼 친한 사이란 말인가? 대화가 진행되면서 함께 어우러질 소리들을 한번 상상해보라. 아무리 친해도 나는 도저히 못 그럴 것 같았다.

그 중 한 칸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조금 있다가 사람이 나왔다. 그런데 나머지 한 칸에서는 계속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면 그렇지! 그냥 우연히 화장실 옆 칸에서, 따로따로 전화통화를 했던 것이다. 화장실 이웃하는 두 칸에서 큰 일 보는 두 사람에게 동시에 전화가 걸려올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만큼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이제는 화장실마저 세상을 가둘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로 가야 혼자일 수 있을까?

2009/10/29 10:13 2009/10/29 10:13
 

헌책에 적힌 편지

가끔 헌책방을 찾는다. 어쩌다 절판된 도서들 중에서 보물을 찾는 행운을 기대할 수도 있고, 근처에 괜찮은 헌책방이 생겼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가장 큰 이유야 당연히 주머니 사정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제 우연히 한 헌책의 표지 안쪽에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발견하였다.


이 편지를 읽으시는 당신은 분명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오. 괜찮으면 살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오.

나도 여기에 이렇게 낙서하면 헌책방과의 가격협상에 불리하다는 것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당신에게 몇 마디 전하고 싶어 이렇게 펜을 들었소.

나도 헌책방을 자주 이용하지만, 가끔은 책을 보며 꺼림직한 생각이 들 때가 있었소. ‘전 주인은 어쩌다가 책까지 팔게 되었을까? 전 주인의 경제적 박복이나, 읽지도 않을 책을 사는 경솔함이 책에 딸려 오는 것은 아닐까?’하며 말이오. 바보 같은 생각 아니겠소. 인쇄소에서 똑같이 찍히는 책인데, 특별히 재수 없는 것이 어디 있겠소. 그저 버림받은 불쌍한 책으로 봐주길 바라오.

그래도 꺼림직함이 행여 가시지 않을까 하여 이 책이 이 자리에 있게 된 이유를 밝히는 바요. 굳이 따지자면 이도 나의 경제적 박복 때문이라 하겠지만, 이 책은 그저 더 이상 보관할 장소가 없어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이오. 폐품으로 버려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책이기에, 그래도 누군가 다시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여기에 내놓게 된 것이오. 그리고 이 책이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 중에서 뒤쳐져서 이 자리에 나온 것도 아님을 아울러 밝히오. 단지, 아직 제대로 읽지 않은 다른 책들이 많이 있어서 그렇다고 이해해주기 바라오.

나는 책을 처음 읽을 때, 되도록이면 밑줄을 긋지 않소. 왜냐하면 다음에 읽을 때, 생각이 그곳에만 머물러 다른 것을 놓칠까 두렵기 때문이오. 그런 위험을 당신에게 떠넘기면 안될 것 같아 밑줄들은 되도록이면 찾아서 지웠소. 굳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을 알고 싶다면 그 흔적을 찾아보기 바라오.

그리고 이미 표지 안쪽에 내 이름이 그대로 적혀있는 것도 보았을 것이오. 영원히 함께 할 것처럼 지워지지 않는 펜으로 이름을 적은 것도 나였기에, 차마 내 손으로 직접 지울 수가 없었소. 이름이야 새로 주인이 된 당신의 처분에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소. 혹시 아오? 내가 유명인이 되어 이름과 편지가 적힌 이 책이 당신에게 뜻밖의 행운이 될지도.

아무쪼록 여기에 버려졌다 이 책을 꺼림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잘 읽고 아껴주기 바라오. 당신의 앞날에 늘 행운이 함께 하길 …


벌써 정말 이런 편지가 적힌 헌책이 있었냐고 묻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솔직히 아니다.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다. 혹시 아는가? 오늘 헌책방 가면 그런 책 만날 수 있을지도 …

2009/10/28 10:14 2009/10/2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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