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사기

태평양 한 가운데에 이름 없는 섬나라가 있다. 어느 날인가 잎이 딱딱하고 날카로운 식물의 씨가 바람을 타고 날아들어와 온 섬을 장악하게 되었다. 맨발로 살던 그 섬 주민들은 더 이상 주된 식량이었던 토끼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 발이 아파서.

굶주림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모두 다른 섬으로 떠나고, 고향 섬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던 7명만이 남았다. 부족회의가 열렸다. 부족회의라고 해야 7명이 모였을 뿐이다. 여러 가지 토론이 이루어졌지만, 해결될 수 없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발이 아파서 달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한 주민이 토끼가죽으로 신발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였다. 하지만 토끼를 잡아야 토끼가죽으로 신발을 만들 것 아닌가? 마을을 뒤져보니 3켤레를 만들 토끼가죽이 있었다.

부족장이 그 중 젊고 똑똑한 사람에게 우선 신발 3켤레를 만들라고 지시하였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발크기를 재어서 그 사람에게 전달하였다. 크기가 80인 사람이 1명, 100인 사람이 3명, 125인 사람이 2명이었다. 젊은 사람은 신발 3켤레를 어떤 크기로 만들까 고민하였다. 그리고 남아있는 섬주민들 발 크기의 평균값을 구하였다. 그리고 흐뭇하게 90크기의 신발 3켤레를 만들었다. 신발을 처음으로 만드는 것이어서 여러 크기의 신발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부족회의를 소집하였다. 신발을 신고 토끼사냥을 나갈 사람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 신발을 신고 토끼를 사냥할 수 없었다. 발 크기가 125, 100인 사람은 신발이 작아서 신을 수 없었고, 80인 사람은 신발이 벗겨져서 달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며칠을 실의에 빠져 있던 섬주민들은 뜻밖에 숲에서 나무에 깔려 죽어있는 토끼를 발견하였다. 역시 신발 3켤레를 만들 수 있는 토끼가죽이었다. 이번에는 부족장이 직접 100크기인 신발 3켤레를 만들라고 지시하였다. 이제 발 크기가 100인 사람은 토끼를 사냥하게 되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렀고 섬의 인구도 많이 늘어났다. 토끼 사냥을 잘 하는 발 크기 100인 사람은 배우자로 인기가 좋았고, 당연히 부모로부터 유전된 발 크기 100인 사람이 섬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발 크기가 100인 사람들만 신발을 신고 토끼 사냥을 하고 있다. 어쩌다 발 크기가 80인 사람이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 가끔 잘못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며칠 전 운동화 사러 갔다가 이 이름 모를 섬나라의 발 크기 80인 사람이 되었다. 나는 발 크기가 240밀리미터에 조금 모자라는 남자이다. 할인 매장에 운동화 사러 갔더니 남자 운동화는 250밀리미터부터 나온다고 점원이 너무도 당당하게 얘기했다. 여자 신발이라도 괜찮다고 하니 볼이 좁을 거란다. 정말로 그러했다. 우리나라나 일본 브랜드 매장으로 가보란다. 볼이 조금 넓게 나온다나?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역시 남자 운동화는 250밀리미터부터 나오고 여자 신발은 볼이 좁았다. 그런데 점원이 잠깐 기다려 보라더니 255밀리미터 신발을 하나 가지고 왔다. 신어 보니 신을 만 했다. 크기 보다 약간 작게 나온 신발이란다. 그 신발을 샀다. 집에 오는 길에 생각을 해보니 나는 잘못 만들어진 신발을 산 것이었다.

구두는 발 크기가 아주 작거나 큰 사람들을 위한 매장이 있다. 그런 운동화 매장도 어디에 있을 법한데, 아직은 찾지를 못했다. 신발을 살 때 고르는 재미 같은 것을 포기한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만들어봐야 손해 보지 않으면 다행일 장사꾼의 입장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
2008/05/29 13:56 2008/05/2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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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현민 2008/05/29 15:50

    토끼 사냥꾼 이야기 재미 있네요. 그렇게 100인 사람들이 우성인자가 되어서 오늘날까지 살아왔군요~ 또다른 쌈빡한 얘기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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