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떡, 남의 얘기

낮 시간이라서 그런지 지하철 탔을 때, 아직 몇몇 자리가 남아있었다. 조금 지나면 분명 사람들 많이 들이닥칠 것이다. 마음 편하게 쭉 자리 차지하고 가려면, 지금부터 자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왠지 너무 식상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사람들은 내가 정말 피곤해서 잠들어도 그렇게 믿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코고는 소리까지 내면서 잘 수도 없지 않은가?

그때 마침 어제 밤 늦게, 내일을 기약하며 마지못해 내려놓았던 소설책이 가방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이 피곤함도 다 이 소설책 때문 아니던가? 그리고 내가 열심히 책 읽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저 사람은 책에 빠져서 주위를 둘러볼 정신도 없다고 생각할 것 아닌가?

다음 정거장에서 한 남자가 “저쪽에 앉아.” 라는 얘기 소리와 함께 바로 옆자리에 앉는다. 고개를 들어 상황을 보니, 연인들인 것 같은데 두 명 나란히 앉을 자리가 없어서 서로 마주 보며 앉게 된 것이다. 순간 ‘나를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미리 알았더라면 자리 바꿔줄 수도 있었는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나는 책 읽는다고 일찍 알지도 못했고, 게다가 무릎 위에는 무거운 노트북 가방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연인들은 마주보고 앉아가면서 둘만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거리가 있으니, 제법 큰소리로 얘기가 오갔고, 옆에 앉은 나는 당연히 다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이 소설책은 분명 어젯밤 그 좋아하는 잠까지 줄이게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몇 정거장째 도저히 책장이 넘어가질 않는다. 급기야 저 두 사람이 눈치챌까 읽지도 않은 책장을 넘겨야 했다.

다행히도 몇 정거장을 더 지나면서 통로가 사람들로 꽉 찼다. 그 연인들은 더 이상 얘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나도 내 손에 있는 소설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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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때는 그 얘기가 더 재미있게 느껴졌을까? 내가 들고 있는 얘기는 나중에 읽어도 된다는 얄팍한 계산이 깔려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남의 떡 같은 남의 얘기여서 그랬던 것일까?

2009/11/18 11:11 2009/11/1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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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푸른솔™ 2009/11/18 11:36

    그러게 말입니다.
    연인들의 달콤한 애기가 오히려 소설책보다 더 재미있으셨나 봅니다.

    • 박승민(풀칠아비) 2009/11/18 11:41

      ㅎㅎ. 그런데 지금 왜 하나도 생각이 안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것인지...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 Phoebe 2009/11/18 11:50

    삼만 하셨으니 책도 눈에 안들어오고 이야기 소리도 안들어 오고...
    그저 고민만 하셨던게 아닐까요...ㅎㅎㅎㅎ
    즐겁고 따뜻한 하루 되세요.^^

    • 박승민(풀칠아비) 2009/11/18 11:55

      그러고 보니 어느 것 하나에 집중을 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네요.
      그런데, 별로 고민할 일은 아니었어요. ㅎㅎㅎ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3. 비밀방문자 2009/11/18 12:57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박승민(풀칠아비) 2009/11/18 13:04

      ㅎㅎㅎ 그런가요. 갑자기 제가 너무 많이 노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ㅋㅋㅋ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4. 뽀글 2009/11/18 13:03

    ㅋ 완전 공감이요..저도 그런적있었던거 같아요..
    재밋게 봤어요^^
    오늘도 좋은하루되세요~

    • 박승민(풀칠아비) 2009/11/18 13:06

      오늘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뽀글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5. 저녁노을 2009/11/18 14:00

    잘 보고 갑니다.

    추운날 감기조심하세요.^^

    • 박승민(풀칠아비) 2009/11/18 14:07

      고맙습니다. 저녁노을님도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6. 한수지 2009/11/18 14:49

    넘 잼있게,,,
    어떤 분위기였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져요

    • 박승민(풀칠아비) 2009/11/18 17:05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고맙습니다.
      좀더 생생하게 상황을 묘사할 수 있으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항상 남아있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7. 바람꽃과 솔나리 2009/11/18 15:55

    전 땀까지 조금 흘렸을 것 같습니다...ㅎㅎ
    그림이 그려지네요~

    • 박승민(풀칠아비) 2009/11/18 17:08

      ㅎㅎ 고맙습니다.
      앞으로는 연습 많이 해서 조금 더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8. big-bite 2009/11/18 17:10

    처음 깨닫았을 때가 바로 행동에 옮길 때인 것 같아요. 연인이 서로 떨어져 있음을 간파한 순간 자리라도 바꾸자는 얘기를 못 했다면, 바로 풀칠아비님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고야 말죠 ^^ 제법 바늘방석이셨겠는데요.

    • 박승민(풀칠아비) 2009/11/19 10:48

      ㅎㅎㅎ. '바늘방석'이라 딱 좋은 표현이네요.
      힘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9. 카타리나 2009/11/18 17:11

    확실히 남의 얘기가 더 재밌다죠
    특히나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란 ㅋㅋㅋ

    • 박승민(풀칠아비) 2009/11/19 10:49

      정말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ㅋㅋ
      저만 그런 것 아니지요?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10. 냥냥 2009/11/18 18:43

    책읽으려면 이어폰끼고 읽지 않으면 전철에선 힘들때 많아요.... 전 전철에서 잠잘때도 이어폰 끼고 음악듣는답니다.... 그래도 옆에서 하는 이야기가 듣고싶을때 살짝 엿듣긴 하지만요...

    • 박승민(풀칠아비) 2009/11/19 10:53

      저는 불행히도 음악 들으면서 다른 일을 못합니다. ㅠㅠ
      그냥 이어폰만 꽂고 있는 것은 괜찮을 것 같기는 하네요.
      좋은 의견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11. 펨께 2009/11/18 19:21

    에구 그분들 다른분들 생각도 좀 해줬으면 좋았을텐데...

    • 박승민(풀칠아비) 2009/11/19 10:59

      ㅎㅎ 심하게 떠드시는 분들도 많이 있지요. 남 생각하지 않고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12. 꿀벌궁뎅이 2009/11/18 22:22

    전화통화도 그렇죠? 듣고 싶어서 듣는게 아니라 어쩔수 없이 듣게 되는 것, 좀 조용히 했음 좋겠다. 듣는 입장에서는 짜증도 나지만 정작 내가 통화할 때는 언제그랬냐는 듯이 그들과 같아지고 있구요.. ㅎㅎ

    • 박승민(풀칠아비) 2009/11/19 11:02

      아. 절대공감합니다. 저도 참 간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네가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얘기도 있잖아요. ㅎㅎ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13. mark 2009/11/19 01:15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하던데 맞나요? ㅋ

    • 박승민(풀칠아비) 2009/11/19 11:06

      예.. 맞습니다. 남의 떡은 뭐든지 왜 그렇게 맛있고 커보이는지 .....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14. 용팔 2009/11/19 02:03

    매우 공감이 가는 내용이네요...

    • 박승민(풀칠아비) 2009/11/19 11:11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15. 블루버스 2009/11/20 13:26

    옆에서 떠드는 소리에 사람은 귀를 기울인다고 하더라구요.
    두 사람이 떠드는 것 보다 휴대폰 대화 소리가 거슬리는 이유는 한쪽 얘기만 들려
    완성되지 않는 대화를 들어서라고 하더군요.ㅋㅋ

    • 박승민(풀칠아비) 2009/11/20 13:49

      아.. 그런 사실이 숨어있었군요. 몰랐습니다.
      한 수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16. 김뽀 2009/11/21 13:33

    은근 중독성 있어요 글읽어보는 재미가 붙어가는듯
    재밌게 잘보고 갑니다^^

    • 박승민(풀칠아비) 2009/11/22 21:25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남은 휴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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