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돼지가 보낸 편지 #3

아무 돼지가 보낸 편지 #1
아무 돼지가 보낸 편지 #2


어제 또 3588로부터 편지가 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편지를 금방 또 받아서 놀라지나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지난 번에도 얘기했지만 난 원래 말이 많은 놈이 아닌데, 본의 아니게 또 편지를 적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우연히 주인이 하는 얘기를 듣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내일이 나의 그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조금 일찍 알았다면 그냥 지난 번 편지에 다 적었을 텐데, 여하튼 서로가 귀찮게 되었습니다.

아마 당신이 이 편지 읽을 때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것 같군요. 그래서 하는 얘기인데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무 돼지 4950에게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들뻘 되는 놈인데 나중에 만나면 애기 전해 달라고 이미 부탁해두었습니다. 사실 당신네들의 굼뜸을 생각하면 적어도 손자뻘 되는 놈을 찾아야 하는데, 주위에 없는 것을 어떡하겠습니까? 우선 그쪽으로 부탁 드립니다.

3574가 가고 그의 부탁으로 당신에게 편지를 보낸 후, 왜 그렇게 3574가 그 답변을 기다렸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일찍부터 우리의 운명을 알고 삶과 죽음에 대해서 초탈해지지만, 그래도 3574는 바보같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자신의 삶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것과 연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내일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조금은 궁금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알게 되면 4950에게 답장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행여 당신의 다음 세상에 돼지들도 눈에 띈다면 3574나 3588을 한번 찾아주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

아무 돼지 3588


돼지 먹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누구라도 돼지가 태어나서 얼마 만에 90Kg이 되는지 알고 있다면 알려주기 바란다. 4950으로부터 또 다른 돼지에게 답장 보내라는 편지를 받기 전까지, 내게 얼마나 시간 여유가 있는지 알아야 될 것 같아서 말이다. 3574나 3588은 다행히 한 마리의 돼지에게 부탁을 했지만, 혹시 아는가? 4950은 조심성이 많아 수십 마리에게 부탁을 할는지. 돼지들이 보낸 편지에 둘러싸이기 싫으면 빨리 답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잘못하다 돼지들이 죽기 전에 나한테 편지 보내는 것이 무슨 의식이나 관례 같은 것이 될까 두렵다.
2009/09/24 11:10 2009/09/2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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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리 2009/09/25 21:57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박승민 2009/09/25 23:10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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