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과 신 포도

이발할 때 주로 회사 근처의 남성전용 미용실을 이용한다. 혹자는 거기 가면 똑같은 모양 만들어내는 ‘연필깎이’가 생각난다지만, 그래도 나는 파마약 냄새 맡으며 동네 아줌마들 틈에 끼여 앉아 기다리기 싫어서라도 꾸준히 이용하고 있다. 그곳이라고 왜 실력 있는 미용사가 없겠는가? 오래 걸리지도 않고 게다가 값도 싸지 않는가?

자주 가는 그 남성전용 미용실에 이발을 하러 갔다. 처음 보는 미용사가 자리에 앉히고는 어떻게 자를 거냐는 당연한 질문을 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수 차례의 진화를 거쳐 “그냥, 단정하게 잘라주세요.”로 정착된 지 이미 오래다. 돼지 털을 연상시키는 내 머릿결에 초보 미용사들은 진땀 흘리기 일쑤인데, 미용사가 중간중간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이 어찌 불안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대뜸 이발 어디에서 했냐고 묻는다. “왜?”라는 짧은 질문에 대답 역시 짧았지만 강렬했다.

“어떻게 그렇게?”

자주 잘라주던 미용사한테 부탁했어야 하는 건데, 왠지 그 동네 규칙에 어긋나는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우아한 미용실에 예약해서 기다리지 않고, 전담 헤어 디자이너에게 조언 받아가며 머리 자를 수 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분명 가격이 만만치 않을 터이니.

살면서 이런 저런 이유나 핑계로 포장하지만 결국은 돈 때문에 못하는 것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별것 아닌 것부터 시작해서 큰 일까지. 자꾸 좋고 값비싼 것이 생겨나서 그런 것일까?

당장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솝 우화의 배고픈 여우처럼 그저 신 포도라고 우길 수밖에 …
2009/09/18 10:11 2009/09/1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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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뽀글 2009/09/18 11:48

    저희남편도 돈때문에 자꾸 싼데찾고 더싼데 찾고 그래요..
    부인으로 보는 입장은 참 안타까우면서도.. 대견하면서도.. 마음한편이 짠하네요..

    • 박승민 2009/09/18 14:20

      남편분이 검소하신가 보네요. 점점 더 돈이 최고인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 적어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 버섯공주 2009/09/18 15:41

    돈 때문에. 못하는 것이 점점 늘어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더더욱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돈. 돈 때문에.
    참 씁쓸한 현실입니다. 와닿네요.

    • 박승민 2009/09/18 15:58

      '여러분, 부자되세요' 하는 광고 문구가 떠오르네요.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3. 바람꽃과 솔나리 2009/09/18 22:01

    정말 우아한 미용실은 값이 엄청나더군요~
    저도 그냥 동네 미용실에서...저렴하게^^*
    솔나리도 같은 미용실에서 예쁘게 이발하고 있습니다~ㅎㅎ

    • 박승민 2009/09/19 08:54

      두 분이서 같은 미용실을 이용하시는군요. ㅎㅎㅎ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4. mark 2009/09/18 23:20

    처음 만나는 이발사가 깎아주는 머리는 100% 실패라고 보면 과장일까요?
    저는 지금 15년째 단골 이발소에 가기 때문에 머리를 맡기고 자고 일어나면 끝입니다.
    조느라 끄덕대는 머리 새우느라 이발사 아저씨가 힘은 좀 들겠지만..

    • 박승민 2009/09/19 08:56

      15년째 단골이시면 이발하시기 정말 편하실 것 같네요.
      알아서 척척 잘 해주실 테니까요.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5. 보시니 2014/05/02 11:53

    남성전용 미용실은,,, 좀 너무 심한 것 같아요.
    가격을 생각하면 감수해야 하겠지만,, 몇천원 더 얹어서 동네 미용실이라도 찾으시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 특별한 날 일년에 한 번 쯤은 메이커 미용실에서 머리 한 번 깎아 보면 참 기분이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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